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늘 선생님의 강압에 의해 원고지에 글을 써 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글을 써 내면 몇 주 후에 조례 시간에 불려 나가 교감이나 교장에게 상을 받곤 했다. 주변의 조용한 야유를 받으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반장을 했던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던 내가 경험했던 최초의 글쓰기에 대한 감상이다. 나는 글짓기가 싫었다.
국민학교 시절, 몇몇 선생님들이 글짓기 하는 요령을 알려 줬다. 맞춤법과 띄어 쓰기에 대해 알려 주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빨간색 색연필로 표시한 줄 만큼 두들겨 맞기도 했다. 또한 상을 받을 수 있는 요령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줬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이렇다,
- 주제는 일상적이지만 특이한 걸로 할 것.
- 소재는 재미있는 걸로 할 것.
- 아이다운 표현을 사용할 것. (아이에게 아이다운이라니!)
- 논리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쓸 것. (애들은 원래 논리가 없다!)
가끔 시(詩)를 쓰라는 엄청난 요구를 하기도 했는데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논리에 따라 잘 계획된 글짓기를 하면 백발 백중 우수상이나 장원을 했다. 그러다 가끔 머리가 돌았는 지 이상한 글짓기를 하곤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늘 내게 꾸지람을 했다. 왜 말도 안되는 글을 쓰냐고. 나는 선생님께 "상 받으려고 쓰는 건 아니지 않냐"고 대꾸를 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께 먼지나게 두들겨 맞았다, 선생님께 반항했다고.
어린 시절 선생님이 전수한 글짓기 요령은 상받는 글짓기의 요령이었다. 글짓기 잘하는 요령이 아니라 심사 위원들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요령이었다. 요즘 블로그 글쓰기에 비유하자면 "내 블로그 방문자들이 좋아하는 글", "내 연령과 지위에 맞는 글", "히트 칠만한 글" 이런 것과 비슷하다.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글짓기였고 그런 글짓기를 오래한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쓰는 요령을 알지 못했다. 원래 뜀뛰기를 못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 시절 몇몇 선생님들이 글짓기에서 주의할 점으로 지적했던 것 중 하나는 "나는"이라는 주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건 <좋은 글짓기 요령>류의 책에도 늘 나오는 이야기다. 어차피 자신이 쓰는 글인데 굳이 '나는'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괜히 주의 주장이 강한 글로 오인될 수 있고 글을 읽기에도 거북하다고 했다. 때문에 가능하면 '나는'이라는 주어부를 쓰지 말고 글을 쓰는 게 좋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너무 자주 '나는'을 남발하는 것은 그리 좋은 글쓰기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이라는 주어부를 반강제적으로 상실하게 되면서 어느날부터 쓰는 글이 도대체 무슨 주제로 무엇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는 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쓰는 글이 누구의 이야기인 지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머릿속에 각인된 '나는이란 걸 쓰면 안되'라는 강박관념은 분명히 내 이야기이고 내 주장이며 내 생각인데 마치 객관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기술하는 버릇으로 고착화되었다. 바야흐로 재미없는 글쓰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시대는 내 글쓰기 인생의 암흑기였다. 현학적이고 개념적이며 비현실적인 표현을 남발하며 실존을 이야기했다. 정말 실존에 대해 깊이 고민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을 상실했기 때문에 간이 배 밖으로 나와 감히 실존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자연과 주체를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나'가 무엇이고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는 왜 살고 있는 가를 배운다. 그 과정에서 '나' 이외의 것 즉 환경이나 자연이나 타인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나'를 인지함으로써 '나 이외의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나'를 중심에 세우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주관적이며 좋지 않은 것이라는 학습을 받게 된다.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배우게 된다. 나를 중심에 세우는 자는 배척 당할 것이라는 협박도 받는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나'를 버리게 된다. 글 속에서 '나'를 버리고, 사회 관계에서 '나'를 버리고, 심지어 내 인생에서 '나'를 버린다.
완벽히 '나'를 상실한 어른들은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젊었을 때 말야..."
그들이 말하는 '나'는 과거의 '나'다. 그들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박제화된 '나'를 신격화하여 타인을 탓하고 몰아 세울 때 '나'를 언급한다. 그들에게 이미 '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의 자신을 이야기하지 않고 과거의, 죽어 버린 '나'를 예시하며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건다.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 없다. 추하고 몰염치하며 지겹다. 왜냐면 현재의 '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감도 생동감도 본 받을 것도 없다. 그들, '나'를 상실한 어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라고 말하는 걸 두려워 하지 말라. 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이기적이지도 않고 건방진 것도 아니며 세상을 어지럽히지도 않는다. 오히려 혼란한 세상사에서 '나는!'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누군가 '나는!'이라고 외친다면 그 사람의 입을 막으려 하지 마라. 그 상대편에서 나 또한 '나는!'이라고 외치면 된다. 서로 '나는!'이라고 진실하게 외칠 때 비로소 '우리는'이라는 주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 대한 표현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자가 어찌 우리라는 표현의 주체가 될 수 있겠는가? 오늘 '나는!'이라고 외쳐 보라. 그것이야말로 주체와 객체, 자신과 세상, 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구호다.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목소리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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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